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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사회주의
날 짜 :  2003-10-05 21:22  조회수 : 20,052   댓글수 : 81  
버나드 쇼는 어린 시절에 과학 항목들을 제외하고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제9판을 통독했노라고 주장한 바 있다. 1920년대초 브리태니커가 그에게 2권 짜리 시사 논평집의 필자로 참여해 달라고 요청했을 때, 그는 당시 편집자에게 이렇게 말하며 거절했다. "도대체 내 글이 이렇게 부탁하는 수고만큼 가치가 있겠소?" 그는 결국 제13판(1926)에 싣기 위해 이 항목을 집필하기로 했고, 이 글은 제14판(1929)에도 그대로 실렸다.


사회주의의 원칙과 전망

쇼, Yousuf Karsh가 찍은 사진
Karsh―Woodfin Camp and Associates
사회주의란, 법률적으로나 실용적으로 가장 단순하게 설명하자면, 사유재산을 공공재산으로 전환시키고 이로써 얻게 되는 공공 수입을 모든 주민에게 차별 없이 평등하게 분배함으로써 사유재산제를 완전히 철폐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사유재산 즉 '물적' 재산은 최대한 축적하되 수입의 분배에 대해서는 아랑곳하지 않는 자본주의를 뒤엎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완전한 도덕적 전환(volte-face)을 수반한다. 사회주의에서 사유재산은 저주의 대상이며, 수입의 평등한 분배가 최우선적으로 고려된다. 반면 자본주의에서는 사유재산이 으뜸이며, 어떤 사회적 부작용이 따르든 분배 문제는 사유재산에 근거한 자유 계약과 사적 이익의 작용에 맡겨진다.

I.

사회주의는 예컨대 맨 나중에 온 사람들까지 사적으로 소유할 수 있을 만큼 넓은 땅을 가진 나라의 문명의 개척자들 사이에서나 존재하는 초기 자본주의에서는 결코 나타나지 않는다. 초기 자본주의에서도 소득의 분배란, 예외적인 힘과 능력을 가진 사람들과 그 반대로 뚜렷한 정신적·성격적 결함을 갖고 있거나 불운에 빠진 시람들 사이의 우애 차원에서나 도덕적으로 있음직한 것처럼, 초보적인 수준의 평등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오늘날과 같은 조건에서는 그나마 이러한 평등마저 그다지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좋은 땅은 모조리 사적 소유로 편입되는 까닭에, 이민이나 인구의 자연 증가로 인한 새로운 사회 구성원들이 소유할 만한 땅은 더 이상 없게 된다. 그들은 땅 소유주들에게 지대를 내고 땅을 빌릴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고, 땅 소유주들은 지주 계급이 된다. 지주 계급은 인구가 늘수록 더욱 불어나는 불로 소득을 향유하면서 이윽고 돈을 빌려주는 계급 즉 자본가 계급이 되고, 그들의 수중에 있는 여분의 화폐는 자본이 된다. 이러한 토지와 여분의 화폐는 오직 회계 장부를 기록할 수 있고 사업을 꾸릴 수 있을 만큼 충분한 교육을 받은 사람들에게만 열려 있고, 이들 대부분은 유산 계급의 자식들이다. 그 밖의 사람들은 주급 또는 일급 노동자나 기능공으로 고용되어 생계를 유지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 상층 계급 즉 유산 계급과, 중간 계급 즉 고용자·경영자 계급, 그리고 임금 생활자인 노동자 계급으로의 초보적인 사회 계급의 분화가 이루어진다. 이러한 사회 계급의 분화에서, 유산 계급은 생산은 하지 않고 소비만 하는, 말 그대로 기생적인 계급이다. 지대라는 냉혹한 경제 법칙에 따라 그들의 수입은 인구가 늘수록 점점 더 늘어난다. 그들의 하인 또는 사치품에 대한 그들의 수요에 따라 기생적인 기업이 출현하고 중간 계급 및 노동자 계급의 고용이 창출된다. 그들은 대중을 공장으로 끌어내고, 그들의 불로 소득에 의존해 살아가며 그들처럼 투표권을 갖고 있는 많은 노동자·고용주들을 이용해 정치적 방벽을 탄탄히 쌓는다.

한편, 유산 계급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고용주들의 상품 생산 경쟁은 '호황'과 '불황'의 악순환으로 파멸적인 과잉 생산에 이른다. 그 결과 노동자들의 지속적 고용은 불가능하게 된다. 임금이 저축 불능의 수준으로 줄어드는 불황기가 도래하면 실업자들의 생존 수단은 공공 구호밖에 없다.

도덕성을 완전히 상실한 부의 분배에 대한 반항으로 사회주의가 일어난 것은 19세기 영국 자본주의가 바로 이 단계에 이르렀을 때의 일이다. 막대한 부는 성질상 비생산 그리고 때로는 노골적인 몰가치와 한 패가 된다. 반면 어린 시절부터 말할 수 없이 고생을 해도 한평생 남은 것이라고는 비참하기 짝이 없는 가난뿐인 노동자들이 늙어서 갈 수 있는 곳이라고는 빈민 수용 시설밖에 없다. 그러나 이곳마저 노동 시장에서 최악의 임금을 받고 일할 힘이라도 남아 있는 한 결코 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 정도로 의도적으로 혐오감이 일게 만들어져 있다. 불평등은 밑도 끝도 없이 심화된다. 노동자 계급은 전후(제1차 세계대전을 말함―역주) 가치로 고작 일당 4∼5 실링을 받으며, 일하지 않고도 하루에 수천 실링씩 벌어들이고 노동을 불명예로 여기는 사람들을 위해 중노동을 한다. 이러한 소득 편차는 노동자들의 개인적 장점을 발휘하려는 모든 시도를 허용하지 않는다. 정부는 엄격한 공장 규약을 만들어 소유주들이 작업장·공장을 마음대로 통제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노동자들을 보호하고, 소유주들이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과잉 노동을 강요하거나 노동자들의 건강과 신체적 안전, 도의상의 복지를 도외시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물론, 점점 늘어나는 불로소득을 소득세와 소득세 특별부가세, 부동산세로 거둬들이고 이를 실업 보험과 공공 서비스의 확대에 사용함으로써 소득 재분배에 어느 정도 개입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빅토리아 시대의 대신들이 상상조차 못할 정도로 상당히 진척되고 있는 이러한 공공 목적을 위한 사유재산 소득의 무보상 징수는 사유재산과 상속재산은 불가침의 영역이라는 관념을 무너뜨렸다. 또한 자본가 계급의 모험이 빚어낸 수많은 실패와 고비용과는 대조적으로, 시정부와 중앙정부가 이렇게 징수한 자본을 공공 산업에 투입해 성공을 거둠으로써, 영리 목적의 민영이 공영보다 언제나 효율적이고 덜 부패한다는 맹목적인 믿음을 뒤흔들어놓았다. 특히 1914∼18년 전쟁 중 영국은 군수물자의 공급을 민영기업에 의존하려다 패배할 뻔했는데, 이를 국영 기업으로 교체함으로써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전후 이를 다시 민영 기업으로 교체하자 번영이라는 미몽은 잠시뿐 곧 극심한 불황의 회오리가 닥쳤다.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보다 효율적이라는 믿음이 급속도로 반전되어, 자본주의는 인기를 잃고 수세에 몰렸다. 그리고 의회 안팎에서 사적 자본의 몰수와 대기업의 국영화, 공기업에 대한 지지세가 줄곧 상승했다.

평범한 소(小)고용주의 입지 악화로 이미 중간 계급 사이에는 이러한 변화가 만연해 있었다. 19세기만 하더라도 그들은 분명 산업의 주인공이었고, 선거권 확대를 위한 1832년 선거법 개정 이후에는 정국의 주도 세력이었다. 그들은 유산 계급을 거리낌없이 대하거나 깔보기 일쑤였고, 직접 또는 하인을 대리인으로 내세워 유산 계급으로부터 토지와 자본을 빌렸다. 그러나 근대적 산업을 움직이고 발전시키는 데 필요한 총비용은 그들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불어났다. 자본 형성을 위한 화폐의 축적은 직업적 흥행사와 금융가들에 의해 운영되는 특수 산업화했다. 이 전문가들은 기업과 직접적으로 접촉한 적도 없으면서 없어서는 안될 존재가 되었고, 사실상 평범한 고용주들의 주인 행세를 하게 되었다. 한편, 주식회사의 성장으로 기존의 고용주 체제는 피고용인-경영자 체제로 바뀌었다. 이는 독립적이었던 중간 계급을 노동자 계급화하고 그들의 정치적 좌익화를 부채질했다.

큰 기업을 일으키거나 기업을 확대하는 데 필요한 자본금이 날로 늘어남에 따라 경영 능력의 향상이 요구된다. 금융가들은 이것을 제공하지 못한다. 사실 그들은 중간 계급이 잘 꾸려가고 있는 사업마저 자신의 직업 영역으로 끌어당겨 단물만 빨아먹는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상황은 시대에 뒤떨어진 상인에 의한 기업 경영이 전문 교육과 훈련을 받은 관료에 의한 기업 경영으로 대체되어야 할 시점에 도달한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이러한 관료를 공급하지 않는다. 그래서 각 기업은 기업 결합을 통한 성장 과정에서 쉽게 난관에 봉착하고, 과거 단위 기업이나 꾸릴 수 있었던 경영자들로서는 이를 감당할 수 없게 된다. 족벌 상속이라는 기업내 요소는 이 어려움을 가중시킨다.

고용주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생존 문제가 걸려 있고 천부적인 재능과 활동력 또는 상당한 과학적·정치적 교양을 갖추어야 할 기업의 우두머리 자리와 소유권을 아무 자격 검증도 받지 않은 장남에게 넘겨줄 수 있다. 반면 그가 자신의 차남을 의사나 해군 장교로 만들고자 한다면, 그는 정부로부터 그의 아들이 오랜 기간 고된 훈련을 받고 공식 자격증을 취득해야 의사나 해군 장교가 될 수 있다는 엄정한 통고를 받는다. 이러한 상황들 속에서 낡은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해 자신의 기업조차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고용주와, 공장이나 탄광의 갱 속에 가 본 적도 없고 자본을 그러모아 위험한 사업에 투기하는 것밖에는 아는 것이라고는 없는 금융가 사이에, 경영과 소유가 분리된다. 그러나 이는 무모하고도 무분별한 자본 가치의 과대 평가를 낳기 일쑤이다. 결국 기업은 도산에 이른다(그들은 이것을 마치 기업 재건인 양 위장한다). 이로써 주주들의 막연한 상상 속에서나 존재하는 이른바 불가사의한 능력의 대가로 막대한 보수를 받고 높은 명성을 누리는 거대 기업 결합 이사진의 기술적 무식과 경제적 무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II.

이 모든 것들은 자본주의의 도덕성을 지속적으로 약화시킨다. 사회주의가 대중과 지식인의 신뢰를 쌓아 온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자본주의는 대중적 신뢰를 상실해 왔다. 그 결과, 20세기 첫 4반세기 말 현재 유럽 정치 상황은 혼란스럽고 위험하다. 모든 정당이 제각각 위험한 사회 병리 현상들을 진단하고 나서지만, 그 처방은 대부분 거의 재난에 가깝다. 그 어떤 옛 강령들을 내세우는 정부라도 자신이 금융가들에게 좌지우지됨을 깨닫게 된다. 하등의 공익적 목표도 전문적인 자격도 없는 금융가들은, 국제 고리대금의 흐름만 좇아간다. 그들은 공공 문제에는 전혀 적용할 수 없는 주먹구구식의 도회지의 일상에 익숙할 뿐이다. 주식 교환, 자본, 신용 따위의 금융 범주만 취급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금융 범주는 거래할 만한 사치품을 가진 소수가 장래의 소득과 예비금을 교환할 때에는 효과가 있겠지만 예컨대 그럴싸하고 인기를 끄는 자본세와 같은 일반적인 정치적 조치를 도입하면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자본세는 해악적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자본세가 도입될 경우 금융시장에서는 팔자 주문만 있고 사자 주문은 없게 될 것이고, 공정 이자율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은행은 해체되고, 임금 지급에 사용할 수 있는 모든 현금이 국고로 환수됨으로써 기업 활동이 멈추게 되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노동자 계급 정당들은 자본가 정당들만큼도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자본세 부과를 외쳐댄다. 한편 자본가들은 자신들의 판단대로 자본이란 허깨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도, 연 수입이 5파운드인 사람의 가용 재산 신고액은 100파운드라는 주장이 주식 중개인 사무실을 들락거리는 투자가들이나 방탕아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라는 것도 인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참으로 무지하게도, 자신들의 상상 속에서나 존재하는 자본이 마치 실재하는 것인 양 변호함으로써, 노동자 계급을 교육하기는커녕 오히려 확실하게 그들을 기만한다.

금융가들은 자기들만의 도깨비불(ignis fatuus)을 갖고 있다. 국가의 자본을 2배로 만들 수 있고, 상품의 가격을 50파운드에서 100파운드로 인상해 통화를 팽창시킴으로써 산업의 발전과 생산에 크게 자극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국가적으로 무익한 반면에 채무자가 채권자를 속이고, 보험회사와 연·기금이 지급액을 과거의 절반으로 깎아 내릴 수 있게 해 줄 따름이다. 1914∼18년 전쟁 이후 유럽의 인플레이션의 역사와 그로 인한 연금 수혜자들과 고정 수입자인 말단 공무원들의 빈곤화는, 기술적 능력도 정치적 식견도 애국심도 없는 '실용적 사업가들'에게 기업과 금융의 주도권을 맡긴 데서 비롯된 끔찍한 결과를 중간 계급에게 실감시켜 준다.

한편 착취할 수 있는 외국 영토들, 이른바 '햇빛이 비치는 곳들'을 차지하기 위한 자본 귀족들의 투쟁은 문명은 물론 인간 존재를 위협할 정도의 전쟁을 낳는다. 전투가 야전 육탄전으로 행해져 여성들이 화를 면할 수 있었던 과거의 전투 양상이 오늘날에는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 공중 폭격으로 남녀 구별 없이 살육하고 인구 격감을 초래하는 양상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전쟁이 끝날 때마다 통렬한 각성이 뒤따르고 자본주의에 대한 도덕적 반항이 고조되지만, 불행하게도 실현 가능한 대안은 나오지 않는다. 노동자 계급은 더 많은 노력과 희생으로 전쟁의 폐허에서 일어서자는 호소에 대해 냉소와 불신으로 답한다. 사유재산제의 도덕적 원천은 이미 산산조각 났다. 자본주의의 야만성 때문에 '굶어죽지 않으려면 일하라'는 자본주의의 기본 원리가 용도 폐기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으므로, 노동자 계급에게 자본주의 체제의 유지를 설득하는 수단으로 불로소득의 몰수, 시 및 국가 단위의 공산주의의 팽창, 그리고 무엇보다도 전국적인 강력한 공장 폐쇄 및 파업 위협을 통해 노동자 계급이 정부로부터 이끌어낸 임금 보조금 신설 등이 등장한다. 일하기를 거부하는 노동자라도 이제는 과거에는 불가능했던 정도로 (결국 몰수한 재산세로 운영되는) 공공 빈민 수용 시설에서 숙박을 할 수 있다.

민주주의 즉 보통 선거가 사회 문제의 건설적인 해결책을 내놓는 것은 아니다. 의무교육도 그다지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여성의 참정권 확립으로 절정에 달했던 잇따른 참정권 확대는 무한한 희망의 근거가 되었지만, 이러한 희망들은 지금까지 좌절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정치적 훈련과 교육을 받지 못한 남녀 유권자들이, 첫째 무엇이 건설적인 조치인지 판단할 수 있는 안목을 갖고 있지 못하고, 둘째 불로소득의 징수 등을 목적으로 하는 과세를 혐오하고, 셋째 지배받기를 싫어하고, 넷째 정부의 개입 확대를 자신의 개인적 자유에 대한 침해로 받아들여 이에 대해 두려움과 분노감을 갖기 때문이다. 의무교육은 그들을 계몽시키기는커녕 사유재산의 신성함을 가르치고, 분배 정의를 추구하는 국가에 대해 범죄적이고 파괴적이라고 비하함으로써 반(反)사회주의적인 낡은 여론을 지속적으로 불러일으킨다. 이로써 사유재산제의 불평등성, 소득 평등의 사회적 중요성, 게으름의 범죄성이라는 최우선 원리에 대한 확실한 교육은 불가능하게 된다.

결국, 자본주의에 대한 환멸이 고조되고 통상 실패 및 통화 가치 하락의 위협이 증폭되는 상황에서 우리의 민주 야당들은 조세 증액, 파산 기업에 대한 강제적 재편성 또는 투명한 국유화, 국민 개병제와 같은 전 사회 계급의 의무 노동이 실제적으로 유일한 치유책임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선거구민들에게 이를 대담하게 제시하지 못한다. 조세 증액 건만으로도 자신이 의원직을 상실하게 될 것임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차라리 이탈리아·스페인·러시아에서처럼 쿠데타가 일어나거나 독재권력이 출현해 의회를 탄압해 주기를 기대한다. 이렇듯 절망에 빠진 의회의 모습은 금세기에 두드러진다. 그러나, 유권자들은 그들이 비록 오랜 투쟁 끝에 권력을 장악했지만 국가를 통치할 지식도 의지도 갖고 있지 못하며, 문명이 국가를 완전 폭파시키는 와중에 오직 자신의 정치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한 표를 던지는 존재일 뿐이라는 사실을 아직까지 깨닫지 못하고 있다.

사유재산에 대한 보다 효과적인 저항은, 인구 증가로 인한 노동 가치의 하락 및 노동 시간과 강도의 상승에 맞서기 위해 노동자 계급을 노동조합으로 조직화에서 나온다. 그러나 '최대한 비싸게 팔고 최대한 싸게 사라'는, 과거 토지·자본·상품에 한해 적용되었던 원칙을 노동에 적용하는 한, 노동조합주의 자체는 자본주의의 한 면일 따름이다. 노동조합주의의 운동 방식은 노동과 자본간의 일종의 내전 방식이다. 교섭을 통해 소소한 조정을 이루는 휴지기가 있고, 공장 폐쇄와 파업이라는 결정적 전투기가 있다. 현재 영국 노동당을 지탱시키는 힘이 이러한 노동조합주의이다. 인기 있는 노동당원과 지도자들은 이론적으로 사회주의자이다. 그리고 기업과 금융기관의 국영화 및 불로소득의 퇴치를 위한 과세, 그리고 부수적으로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명시한 문서로 된 강령을 갖고 있다. 그러나 노동조합의 주도세력은 '노동계급의 몫을 최대한 챙기자'라는 자본주의와 다를 바 없는 것을 목표로 삼고, 파업권 상실에 대한 우려로 전국민의 의무 노동제에 강력히 반대한다. 후자 즉 전국민의 의무 노동제에 대한 반대에는 유산 계급 정당들도 기꺼이 지지를 표한다. 왜냐하면 파업 불법화와 노동자 계급의 노동 의무화에는 언제든지 팔 걷고 나서는 그들이지만, 빈둥거리며 살 권한의 포기라는 대가는 치르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뿐만 아니라 조직된 노동조합마저 사회주의의 필수 요건인 전국민 의무 노동제를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위대한 문명을 건설한 자본주의가 일정 시점에 이르면 자신이 건설한 문명을 또한 무너뜨린다는 것은 하나의 경제 법칙이라고 할만큼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역사적 사실이다. 당장 자본주의를 폐기하고 사유재산과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국가를 공유재산과 분배를 추구하는 국가로 바꾸면 문명을 구하고 이를 크게 발전시킬 수 있다고 글로 적기란 쉽다. 그러나 지금까지 변화의 계기가 누누이 있었지만 변화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자본주의는 결코 대중의 계몽을 낳지 않았고, 사회주의 즉 정당의 선거 구호와 구별되는 것으로서의 정치에서 필수적인 지성과 인격의 원리를 공무 수행에 적용하는 것을 허용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안정된 사회주의 국가의 실현은 사유재산―이를 개인 재산과 혼동해서는 안된다―의 철폐와 소득의 평등이라는 두 가지 주요 신조가 종교적 도그마처럼 민중의 마음을 사로잡게 될 때 비로소 가능하다. 이에 대해서는 정신 이상자가 아닌 한 반론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여기서, 현존하는 다른 분배 방식이 없고 또한 그것이 가능했던 적이 없다고 해서 사회주의의 두 가지 주요 신조 가운데 하나인 소득의 평등이 필요하다는 근거를 제시하기가 어려운 것은 아니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타고난 재주가 있거나 운이 따라 실제로 큰돈을 버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노동자들 사이의 소득 격차는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집단적인 것이다. 집단 내에서는 개인간의 차별이 있을 수 없다. 고위 공직자들과 마찬가지로 일반 노동자들은 자기가 속한 집단 내에서는 평등한 임금을 받는다. 중요한 것은 계급간 소득의 평등이다. 그 논거는 다음과 같다. 구매력의 불평등한 분배는 정상적인 생산 질서를 교란시키고, 사치품의 생산은 넘쳐나는 반면 생활 필수품의 생산은 부족한 결과를 낳고, 배우자 선택을 제한할뿐더러 부패하게 함으로써 결혼에 매우 비우생학적인 영향을 미치고, 종교·법률·교육 및 정의의 집행을 빈부차처럼 부조리하게 만들고, 모든 건전한 사회적 도덕성을 뒤엎는 재물과 게으름에 대한 우상화를 낳는다.

불행하게도, 이런 것들은 본질적으로 공적인 이해에 지나지 않는다. 불평등 때문에 출세 길이 꽉 막힌 개인이 극도의 궁핍 속에서도 상당한 유산이나 꿈같은 행운을 꿈꾸는가 하면, 그나마 얼마 되지 않는 자신의 소유마저 가혹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국가 정책 때문에 날려버리지나 않을까 하고 두려워한다. 그래서 개개인의 투표는 이른바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투표'에 불과하게 되고, 민주주의는 우왕좌왕할 정도로 유연한 부호계급의 보수주의보다 사회주의를 가로막는 데 더 효과적인 수단이 된다. 이런 상황에서 미래를 가늠하기란 어렵다. 제국들은 멸망한다. 지금까지 국가는 문명의 수용력을 초월해 왔다. 그러나 모든 낡은 문명을 난파시킨 갑(岬)을 인류가 헤쳐나갈 수 있는 가능성은 항상 열려 있다. 이 가능성이야말로 오늘의 역사적 순간에 깊은 관심을 갖게 하고 사회주의 운동의 활기와 투쟁력을 유지시키는 힘이다.

(G. B. S.)

Posted by C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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